김훈 선생 글 '허송세월' 중 "읍/곡/체 " -소헌 쓰다
2024. 9. 24. 10:05ㆍ카테고리 없음
장미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
강렬하면서 매혹적인 꽃
청춘의 꽃
이제 장미는 없다
내 눈에 들어온 건
심지도 않았건만 뿌리를 내린 이름 모를 풀
눈부시게 찬란하다
어제는 분명 여름이었던거 같은데
오늘은 가을
소독(素讀)의 시절은 지나갔으나
미지를 읽고 이해하는 베타 읽기의 삶 덕분에
계절을 그냥 보내지 않고
변화에 온몸으로 느끼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.
붓을 들어야지 하면서 습관적으로 책을 펼쳤다
김훈 -허송세월
한 장 한 장
한 자 한자
글마다 여운이 길다
사람이 울 때 소리를 삼키고 눈물만 흘리는 억눌린 울음을 泣(소리없이울을읍) 이라하고
소리를 내지르며 슬픔의 형식이 드러나는 울음을 哭(소리내어울곡) 이라고 하고
눈물도 흘리고 소리도 나는 그 중간쯤을 涕(눈물 체) 라고 한다는데
이날 나의 마당에서 울고 간 새의 울음은 이런 어지러운 말을 모두 떠나서
몸 전체를 공명통으로 삼아 소리를 토해내는 울림 鳴(울명) 이었고
이런 울림은 모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자음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.
모음은 슬픔의 서사구조를 용해해서 울림으로 울리게 하는데
이 울림은 슬퍼하는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는 정화기능을 갖는다
p73
김훈 허송세월 中
그러고 보니 슬픔에 자음이 낄 수 없었구나...
泣(소리없이울을읍)
哭(소리내어울곡)
涕(눈물 체)
붓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
글(전서)에도 울음이 가득하다.